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하카타 만 상륙 작전 === || [[파일:여몽연합군_하카타만.jpg|align=right]]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3d18f24fb0f1a189a51745daedce7bb1.jpg|width=420]] || 음력 10월 17일에 연합군은 일본 본토인 [[규슈]]에 있는 다카시마에 상륙했고, 일본 막부군은 급히 내려가서 산성을 구축하고 싸웠으나, 막부군은 계속 밀리기만 했다. 일본 무사들의 개인 전법에 대항하는 연합군의 집단 전법, 연합군이 무장한 철포(鐵砲)의 위력에 막부군은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리고 여몽연합군은 겐카이나다(玄海灘, 현해탄)를 지나 지금의 [[후쿠오카시]]인 [[하카타]] 만으로 향했다.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당시 규슈 지방의 중심도시 [[다자이후]]가 나오기 때문에 하카타 만 상륙은 전쟁 초반의 분수령이나 다름없었다. 음력 10월 19일, 여몽연합군의 일부 병력이 하카타 만 서부 해안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했고 다음날 모모치바라, 이키노하마, 하코자키 해안 등 3개 방면에서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 작전이 개시되었다. 다자이후의 총사령관 쇼니 스케요시(少弍資能)는 이미 쓰시마 섬, 이키 섬이 점령당했다는 급보를 듣고 가마쿠라 막부와 교토에 급사를 전했고 [[규슈]] 내의 슈고, 지토 및 고케닌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또한 하카타 지구에는 일본군 총사령관 쇼니 스케요시(少弍資能)의 아들인 쇼니 카게스케(少弐景資)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당시 규슈 지역의 총동원령을 통해 소집된 일본군 전체 병력은 대략 1만 1천 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